우리가 만든 (별, 파도, 그리고 인간관계) 자리
우리는 때로, 말을 건네지 못한 채 마음을 보냅니다.
너무 작고 여려서, 닿을 수 있을까 조심스러워지는 마음.
이은정 작가의 그림은 그런 감정들로 가득합니다.
처음엔 파도였습니다.
흐르고, 흔들리고, 다시 돌아오는 파도는
마치 말없이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 안에 담긴 색과 형태는 작가의 감정이었고,
그 감정은 다시 관객의 마음에 조용히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제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별자리를 만들고,
그 별자리 안에 ‘사람’의 도형을 세웁니다.
그들은 어딘가를 바라보거나, 때로는 서로를 등지고 서 있습니다.
그 모습은 바로 우리 — 가까우면서도 멀고, 닿을 듯 어긋나는 관계들의 풍경입니다.
서양화 작가 이은정의 개인전 《우리가 만든 자리》은 오는 2025년 6월 13일부터 7월 10일까지, 지소갤러리 2층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작가가 수년간 탐구해온 감정의 형상화와 사람 사이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의 서정적 아카이브로 구성한 자리로,
파도에서 별자리로 이어지는 작품의 궤적을 따라 시간, 기억, 감정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이은정 작가는 초기 작업에서 파도 형태를 반복적이고 절제된 색채로 구현하며,
삶 속에서 마주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그 안에서 피어나는 우연한 인연들을 시각화 해왔다.
파도는 그 자체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동적인 관계를 상징하며, 감정이 밀려오고 다시 멀어지는 ‘관계의 리듬’을 표현하는 매개체였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감정적 흐름이 더 정제되고 내면화된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이세상에 없던 별자리 형태를 창조하고, 그 안에 추상화된 인물 실루엣을 삽입함으로써 존재와 관계의 흔적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익명의 인물들이 어떤 별자리를 구성하는지,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이 연결되었는지에 대한 상상은 관객 각자의 기억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이처럼, 이은정의 작업은 하나의 형상에서 출발해 감정, 인연, 기억, 존재의 시적 구조로 진화해왔다.
전시는 지소갤러리의 유려한 자연광과 작은 창과의 조화, 그리고 여백 있는 벽면을 적극 활용하여 구성되었다.
작품 사이의 간격을 충분히 확보해, 관람객이 한 작품 앞에 머물며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감정의 여운이 공간 전체에 확산되도록 조명과 음향 또한 섬세하게 조율되었기에 관람객들이 감상보다는 머무름과 공명을 위한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
- 아이비 큐레이터
작가 소개
부산대학교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을 졸업하며 부산, 창원, 서울, 대전, 그리고 싱가폴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은정 작가는 오랜 시간 ‘파도’라는 자연의 형상을 통해 감정의 흐름과 내면의 리듬을 캔버스 위에 펼쳐왔다.
초기 작품에서는 색의 조합과 파도 형태의 반복을 통해 조용한 움직임, 부드러운 파동,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정서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가는 서있는 사람을 그려 넣으며 이 인물들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거리, 감정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무심히 선 듯한 형상 안에는 오랜 관찰과 사유가 깃들어 있으며,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어떤 파동을 남기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조용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