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효실 개인전
<겨울, 바다, 그리고... 위로>
2024.12.06 - 12.31
평론글 by 김세린(미술사학 박사,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
황효실의 작품을 찬찬히 보다보면 내가 어느 해변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굳이 특정한 곳을 응시하지 않아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 풍경. 황효실의 작업은 이러한 ‘바라보다’라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바라보다’는 황효실의 한국화 작업에 있어 핵심적인 행위이자 사색의 시작이다.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을 좋아하는 작가는 초창기 작업부터 자연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풍경을 바라보고 느끼다보면 상념이 이어진다. 소소한 일상부터 앞으로의 꿈, 자신의 창작관 등 생각은 자연의 작용에 의해 불규칙하게 빚어진 풍경처럼 모아지고 흩어짐을 반복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는 작가가 묘사한 풍경에서 사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간 황효실의 작업은 ‘바라보다’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변화했다. 작가는 자신이 바라본 풍경을 작업의 근간이자 정체성인 동양화의 산수풍 스타일로 구성하고, 필법이나 색, 질감 등으로 변주를 준다. 초기작에서는 마치 중국 북송대 미우인(米友仁, 1090-1170)의 미법산수(米法山水)에서 사용하는 미세한 점을 선묘로 동그랗게 확장해 화면 전체의 산수풍경을 특유의 선묘 점으로 꽉 채우는 세밀함을 부각했다. 그 이후 작품 경향은 변화했지만 세밀한 기법적 정밀 산수는 이어졌다. 이는 ‘바라보다’라는 행위로 바다를 표현하는 구성적 특징과 함께 황효실 작품에서 나타나는 작가 고유의 정체성이다.
바다, 색의 적층
황효실의 바라보다 작업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풍경은 바다이다. 바다는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이다. 물결이 흐르고 파도가 몰아치며 새가 자유롭게 비행한다. 바라보며 구현한 작품에서의 바다는 삶에 대한 작가의 사색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황효실의 작업은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작가의 모습은 삶의 궤적과 함께한다. 작가는 바다에 자신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담아왔다.
수묵과 함께 가볍게 또는 흰 여백까지 있었던 작품의 바탕이자 바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더해졌다. 바탕 전체에 첫 색을 칠하고 하얀 호분을 바르고 색을 또 더하면 두터운 질감이 생긴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의도한 색에 우연성을 부여한다. 작가가 켜켜이 쌓아간 색은 마치 잔잔한 심해의 색과 얕은 바다의 색, 파도가 빚는 바다의 색이 동시에 연상될 만큼 자연스럽다. 의도와 우연이 반복되며 쌓이는 일상의 이야기와 여러 생각, 이들의 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삶의 형상을 작가는 바다를 표현하는 과정과 완성된 색에 투영한다. 그리고 완성된 바다에 섬과 같은 소재를 더한다.
섬과 물결 그리고 다다름
황효실이 구현한 바다에는 섬이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작가의 작업에 있어 섬은 핵심적인 소재이다. 섬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바다에 우뚝 서있는 모습이 강조된 작품 속 섬은 검은 빛을 띤다. 여기에 금니와 같은 보색을 활용하여 섬의 지형을 선묘로 간결하게 표현했다. 작가가 구현한 바닷물은 섬을 만난다. 섬에 다다른 물살은 섬을 비껴가거나 유유히 흘러간다. 또 파도가 되어 섬에 직접 부딪친다. 작가는 굵은 선을 활용하여 이러한 움직임을 표현하면서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인 인간 삶의 궤적을 내재한다. 그래서인지 선의 굵기과 흐름을 살펴보면 일정한 것 같으면서도 제각각 율동감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서 섬은 장애물로 볼 수도 있고 지향점으로 볼 수도 있다. 또 휴식처가 될 수도 있다. 작가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에게 그 의미를 열어둔다. 각자의 바다와 물결이 다르고 그에 따른 섬의 의미가 다르기에.
새와 종이학
황효실의 바라보다 작업에서 언젠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소재 중 하나는 새와 종이학이다. 새는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다. 유유히 비행을 하다가 먹이를 구하기도 하고 섬에 도착해 쉬기도 한다. 바다를 바라보면 자연히 보이는 존재이기에 작품에서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종이학은 굉장히 이질적이다. 인간이 접어서 완성하는 종이학은 지극히 인공적이다. 접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재료와 색, 크기, 용도가 결정된다. 그만큼 접는 이의 욕망이나 희망이 내포된 물질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종이학은 선묘로 접혀진 형태가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바다 위에서 어딘가로 움직인다. 재료적 특성상 종이학은 바다에서 오래 버티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나아간다. 마치 저 멀리에 있는 섬에 닿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처럼.
어떤 이에게는 소중한 꿈이자 바람을 다른 이가 이상하게 또는 한심하게 보는 것처럼 때로는 작품에서 새가 바다 위를 표류하는 종이학을 낯설게 본다. 그렇지만 알면서도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작가는 종이학과 새라는 대치되는 소재로 표현하였다. 소망을 위한 여정 역시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기에, 그리고 닿을 수도 있기에. 작품 속 종이학의 행위는 바다라는 길에 파도와 바람 같이 당연한 변수가 있음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우리의 일상, 인생의 여정과 꼭 닮았다.
황효실에게 바다는 늘 바라봄의 대상이자 일상을 소회하는 사유의 공간이다. 작품에서 바다는 선과 면을 통한 잔잔함과 율동감을 지닌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흐름에서 형성되는 물결과 파도는 작품 속에서 특유의 색과 질감으로 완성되었다.
‘바라보다’ 작업은 ‘바다’ 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계속 표현되고 변모해왔다. 여기에는 흘러가고 있는 작가의 변화하는 삶과 생각이 반영되었고,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풍부해졌다. 앞으로도 바다를 바라보는 작가의 행위는 이어질 것이며 작품은 꾸준히 변화할 것이다. 바다를 통해 삶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황효실의 향후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시 전경
황효실 (Hwang hyosil)
목원대학교 미술대학 미술학부 동양화전공 졸업(학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동양화전공 졸업(석사)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동양화전공 졸업(조형예술학박사)
개인전
제11회 개인전 마주하다 (지소갤러리, 대전 2021.05.27 - 06.08)
제10회 개인전 눈이떠난 자리에서 마주한 감수성의 바다 (화니갤러리,대전 2020.9.17.-9.26)
제9회 개인전 풍경-그곳에서 마주하다. -정지된시선- (화니갤러리,대전 2017.5.16.-5.26)
BOOTH개인전- 대전국제아트쇼 BOOTH NUMBER (대전무역전시관 2015.11.19.-2015.11.25.)
BOOTH개인전- 대전국제아트쇼 BOOTH NUMBER (대전무역전시관 2015.11.19.-2015.11.25.)
제8회 개인전- 선화기독교미술관 청년미술상 수상작가초대전 (선화기독교미술관 2015.11.11.-11.25)
제7회 개인전 – 차경(借景)으로 본 산수풍경 연구 (가나인사아트센터/서울 2013.8.21.-8.26, 이공갤러리, 대전/ 2013.8.29.-9.4)
제6회 개인전 황효실‘산수여정’ ; 자연과의 능동적 말걸기 (오원화랑,대전/2011.11.17.-11.21)
제5회 개인전 “자연-산수를 담다” (선화기독교미술관, 논산/2010)
제4회 개인전 “풍경-그곳에서 보다”<자연-담아내기> (갤러리영, 서울/2009)
제3회 개인전 “풍경 -그곳에서 보다.” (영아트 갤러리, 서울/2008)
제2회 창조회 초대 개인전 “풍경 -그곳에서 보다.” (단원미술관, 안산/2006)
제1회 개인전 “풍경 -그곳에서 보다” (갤러리 라메르, 서울/2006)